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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24.1.9 강남역에서 사이비 선교 당한 후기

모카월드 2024. 1. 9. 19:54

강남역에서 사이비 선교를 당했다고 하면 뭔가 어리숙한 사람이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의심이 많고 객관적이라 이런 것에 당할 이유가 없다면서. 나도 그랬다. 사이비 선교 집회에 가기 전에(내게는 무료과학 강의를 신청해 준다고 했다) 네이버나 구글에 나랑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나 검색해 봤지만 없었다. 사이비의 선교방식은 점점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혹시 나처럼 사이비 집회로 의심되는 강의에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볼까 싶어서 글을 남긴다.

1단계 - 강남역에서 전화번호 수집하기,
내가 당한 방법은 자신은 뮤직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유투버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20,30대는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지 설문조사를 한다고 했다. 나는 20대부터 강남역에서 수많은 ‘도를 믿으십니까’ 그루를 많이 만나봤다. 주로 남성 한 명, 여성 한 명이 팀을 이루며, 혼자 길을 지나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 이 사람들은 누가 봐도 약간의 찐따미가 있는 게 사이비 같은 느낌이 팍팍 든다. 그러나 ‘뮤직 플레이리스트 유투버’로 가장한 사이비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봤을 때는 이분은 스스로 사이비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스스로를 교회의 한 분파의 신자라고 여기며, 이런 방법을 단순히 선교의 한 가지 방법으로 여기는 것 같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젊고 트렌디한 생김새였고, 목소리도 살짝 떨리고 쑥스러워하는 게 의심이 크게 되지 않았다.
”지금 무슨 노래 들으세요? “ ”최애곡이 어떤 거예요?”라는 질문으로 유튜브 채널을 보여줬다. 다만 유튜브 채널을 보여준 뒤 순식간 폰을 가져갔는데, 나는 당시에 유튜브 채널 구독해 달라고 하는 줄 알고 긴장했었다.
간단하게 답변을 하고 나서, 설문조사지를 주면서 이름, 나이대, 직업등을 알고 싶다고 했다. 설문조사를 해준 대가로 추첨으로 상품권을 준다고 했는데 여기서 내 실수가 내 전화번호를 알려준 것이었다.

2단계 - 무료 강의 초대하기
1달 뒤쯤 전화로 연락이 왔다. 사실 이때도 목소리에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기에 나는 의심이 덜 되긴 했다. 사이비 특유의 철면피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료강의가 있는데 올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문자로 링크를 보내주었는데, 강의내용이 ‘방황하는 청년을 위한 과학 강의’였다. 이 강의는 강의 모음 앱에서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게 그럴듯해서 실제로 있는 강의 같았다. (또는 실제로 있는 강의인데 도용했을 수 도 있다) 나는 평소에 코스모스나 오펜하이머 등 과학애호가라서 무료 강의라고 하니 끌렸다. ‘방황하는 청년’은 아니긴 했다. 나는 멀쩡히 직업도 있고 방황할 시기는 지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강남역은 자주 오고 가는 곳이기도 하고 공짜라고 하니 가기로 했다.

3단계- 의외로 밝고 젊은 분위기
강의를 갔더니 내게 강의를 소개한 여자가 옆자리에 같이 앉자고 했다.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은 50명은 되어 보였다. 강남의 한 빌딩이었는데, 평소에는 부동산강의를 하는 빌딩이었다. (부동산강의를 주로 하는 빌딩이라는 것이 좀 의심스러웠다) 50명 모두 20,30대였다. 아르바이트생처럼 안내를 해주는 사람들은 모두 20대로 젊어 보였고, 이쁘고 잘생겼다. 나는 여기서는 의심을 좀 풀었다. ‘진짜 과학 강의인가 보네’ 나의 걱정은 과학 강의 수준이 낮을까 봐였다. 그런데 처음 시작부터 이상했다. 과학강의면 그냥 강사가 담백하게 나와서 자기의 약력을 소개하고 진행하면 될 텐데, 사회자인지 모를 여자가 와서 자꾸 분위기를 뛰었다. 박수를 쳐서 강사를 불러달라느니, 강사가 잘생겼다느니, 상품권을 주겠다느니. 이게 뭐 레크리에이션도 아니고… 어쨌든 한참을 손뼉 치고 소리를 지른 뒤 훤칠하게 생긴 강사가 들어왔다. 성균관대 출신이고 어쩌고 하는 약력 소개가 PPT에 띄어졌는데, 순식간에 지나가서 어떤 자격이 있는지 확인은 못했다. (핸드폰으로 촬영과 녹음을 하지 못하게 공지를 하기도 했다) 강의 내용이 뭐냐면 ‘과학에는 허점이 많고, 이 허점은 신이 있다는 증거이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강의 시작 10분 뒤부터 나가고 싶어서 엉덩이를 들썩였으나, 뒤쪽에는 사이비 교도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꽉 앉아 있어서 헤치고 나가기 어려웠다. 뒤쪽에서 호응하는 소리가 유독 컸던 것도 그들이 사이비 교도 같은 이유였다.  당연하지만 과학이 밝히지 못한 것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신이 있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나도 과학자 중에 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과학의 허점이 신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증거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나는 그들의 어이없는 주장과 호응에 알레르기가 나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시간낭비했다는 생각에 내 어리석음을 탓했고, 동시에 이 사이비 교도들이 이해하고 싶기도 했다. 사이비 교회가 신도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적작용의 가능성만 앗아가는 것이라면, 뭐 그렇게 살아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다만 조금 화가 나는 것은 미래가 불투명한 젊은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의 불안함을 자극하고, 그것을 사이비에 믿는 원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의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취준생으로 보여서 제발 이런데 있지 말고 나가서 취업준비나 더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강의가 끝나고 미래에 대해 상담을 해주는 세션이 있다고 했다.  강의에서는 딱 ‘과학의 허점’, ‘요즈음 젊은이의 불안함’ ‘신이 있다는 증거’‘창조론의 타당함’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데 그쳤다. 아마 그 세션에서 본격적으로 사이비 교회 소개를 하는 것 같았다. 상담세션을 거절하고 나가는 길에, 횡단보도에서 같은 강의를 들었던 두 명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평소에 교회를 다니는 남녀 같았는데, 이런 식으로 선교를 하는 것에 대해 감탄과 더불어 화를 내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강의를 온 사람들 중에는 사이비가 아닌 일반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았다.


글이 너무 길어졌다. 어쨌든 나처럼 속아서 시간낭비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 강의를 하는 빌딩은 강남 사랑의 교회 근처였다. 나는 다시 돌아온 파파이스로 가서 햄버거 세트를 먹으면서 시간낭비에 대한 보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