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읽고 필립 K 딕에게 빠져버린 나는, 폴라북스에서 펴낸 필립 장편선을 순서대로 읽기로 했다. 그 첫 번째가 [화성의 타임슬립]이고, 필립의 중기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한다. 나는 혼자 원룸에 살고 있어서 책이 더 이상 늘어나면 안 되는 상황이라, 필립의 소설들은 E북으로 샀다. (이미 종이 책으로 산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제외하고) 다른 독자의 후기는, 이 책의 앞부분은 후반부를 위한 빌드업이고, 그런 만큼 후반부가 강렬하다는 글이 많았다. 나는 그 의견들에 딱히 동감하진 않는다. 후반부가 괴기스럽고 강렬했지만, 초반부부터 세계관에 빠지게 만드는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특히 노버트가 죽는 사건이 그랬다. 소시민이자 가장인 노버트는, 과중되는 책임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한다. 노버트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에게도 아들에게도 그리고 부하직원에게도.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주변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슬퍼하다가, 그의 죽음에 스스로의 책임이 있었는지 그들의 행동을 살핀다. 분명히 이 사건이 그들의 감정에 파문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도 그의 죽음에 진정으로 슬퍼하지 않았다.
2. 이 소설의 빌런인 어니 코트는 주인공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어니 코트는 여러 가지로 (이 소설이 쓰인 연도를 생각하면) 혁신적인 캐릭터 같다. 나는 어니 코트를 보면 스파이더맨의 빌린인 킹핀이 떠오른다. 공통점은 둘 다 도시의 지배자라는 점이고 (물론 어니 코트는 낮과 밤 모두 지배하고 있고, 킹핀은 밤에만 뉴욕을 지배한다) , 둘 다 거구의 백인, 그리고 사업적인 능력이 뛰어나다. 그런데 어니 코트는 거기에 더해 애인에게 소유욕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집사에게 은근히 무시를 당해도 능력만 좋다면 곁에 둔다. 게다가 주인공인 잭과 부딪히고 복수를 꿈꾸다가도, 잭이 능력이 있자 인정하고 직원으로 삼는다. 심지어 잭은 어니를 친구로 생각하고, 그 사이가 멀어질까 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어니의 입버릇은 거칠고 욕을 달고 살기는 하는데,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쁜 짓을 한 것도 없다. 다만 자신의 재산증식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이용하고, 경쟁자의 창고에 로켓을 날리는 행동을 하기는 한다. (쓰다 보니 나쁜 놈이 맞긴 하네) 사실, 주인공은 잭이 아니라 어니인 것 같기도 하다. 단지 어니가 주인공이 아니라고 보였던 것은 그가 착하지 않다는 이유뿐이다. 만약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잭을 주인공으로 삼으면 좀 더 대중적인 영화가 될 것 같고, 어니를 주인공으로 삼으면 좀 더 이 소설의 작품성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3. 재미로 따지자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가 이 소설보다 더 재미있었고, 장면장면에 여운도 더 많았다. 그러나 [화성의 타임슬립]의 특유의 괴기스러운 분위기는 이 소설의 독자적인 색깔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설의 제목은 정말 낭만적이다
